종전 없는 평화 산문

최근 북미 회담 일정이 지연, 취소,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협상을 위해 방북을 서두르던 미측 국무장관의 방북취소가 발표되자 남측은 당황하고 중국 측은 머쓱해지고 당사국인 북은 침묵에 들어갔다. 이른바 '빈 손'과 '역습' 공포 때문이다. 여기에 납북회담 준비를 내세워 남측은 급히 북에 특사를 보내 중재에 나설 계획을 세우는 둥 발길이 바빠졌다. 판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한 공통의 상황인식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북미회담의 문제는 상호 불신에 있다. 북측의 선 종전선언과 미측의 선 비핵화가 맞서 있는 이 대립은 우리에게 정치와 전쟁의 생리와 그 상호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 준다. 이미 남북 북미 회담에서 종전과 비핵화를 다짐한 마당에 그 조건의 선후가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인가에 대해 되묻게 된다. 싸움을 끝내자는 선언이 먼저인가 손에든 칼을 버리는 행위가 먼저인가는 누가 봐도 전자가 맞다고 할 것이지만, 약속은 당장 할 수 있지만 무기 또한 도로 주워들면 그만이라는 점에서 양측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말은 쉽지만 흉기를 멀리, 되찾기 어려운 곳으로 버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전쟁은 그 내용만큼이나 복잡한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행위의 일시적 또는 잠정적 중단이 휴전이라면 정전은 적대행위의 중단이고 종전선언은 교전당사국들이 전쟁을 종료시켜 적대관계를 해소시키고자 공동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것, 강화협정이나 휴전협정과 구분하여 종전선언이라고 표현한다. 종전선언은 전쟁을 종료한다는 점에서 전쟁 상태인 정전휴전과는 차이가 있으며, 전쟁의 원인을 해소하거나 재발을 방지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화협정이나 평화협정과는 다르다.

선언과 실천, 말이 먼저인가 행위가 먼저인가에 대한 이 단순한 의문 속에는 그러나 양측의 잊을 수 없는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숨어 있다. 미측은 북측의 그동안의 수많은 협약 위반사례로 인한 불신에 쌓여있고 북측 또한 자신들의 무장해제에 따른 미측의 무단 공격에 대한 불안이 있을 것이다. 싸움을 끝내자는 선언이 없었으므로 예측 불가능한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를 먼저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측 또한 선언이 쉽지 않은 것은 그 선언에 부수되는 후속조치 때문일 것이다. 전쟁 끝났으니 그동안 함께 했던 동맹군과 그 기지의 존재를 부정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신뢰 문제에서 엇갈린다. 마치 닭이냐 계란이냐의 싸움으로 번져 있는 이 소모적인 분쟁은 그 논거의 합리성 못지않게 양측이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전쟁발발 68, 분단 73년의 한국 현대사는 전쟁의 폐허를 경제와 민주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한 자긍심 못지않게 지척에 둔 부모형제조차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 속에 있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인식하는 데 민족자결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떠올려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3.1운동 당시의 사상적 배후로도 지목되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의 평화론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민족문제는 그들에게 맡기자는 소박한 이론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파장은 컸다파리강화회의에서의 윌슨의 민족자결론은 강대국들에 의해 왜곡되는 사례를 남기기도 했지만 당시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의 열망에 불을 지폈다.

지금 북미는 각각 회담의 승자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이지 결과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평화협상에 승패는 없다. 남북미중이 각각 승자로 남기만을 바란다면 지금의 휴전상태에서의 갈등과 대립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하여 평화란 휴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역설만을 낳을 뿐이다.

이제 평화협상가 윌슨의 금언 - 승리가 없는 평화이어야 한다. 균등한 힘의 상황에서만 평화는 계속된다-는 명제에 남북미중은 동의해야 할 때이다. 요즘의 북미간의 종전은 존재하지 않는 약속이요 휴전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종전 없는 평화가 가능한지, 북미와 남북은 이 우매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일신문, 2018.9.3

 

 


강요배, 풍경의 은유 갤러리

강요배전(학고재, 2018.5.25.-7.15)이 열렸다.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하고 지금 제주에 살고 있는 그는 그 사이 17여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6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광주 민중항쟁사(1992)전을 열면서 이미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드러낸 바 있는데, 이는 그가 4.3의 학습자이자 80년 광주의 목격자로서 현실과 발언이라는 미술운동에 참여, 예술이 민주화나 노동운동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어떻게 간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기모색의 과정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이후 그의 그림은 한국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들에서 창작 모티프를 구하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그가 4.3 50주년 기념-동백꽃지다(1998)를 열면서 소위 민중미술로서의 자신의 작가적 면모와 위상을 분명히 했다. 80년의 광주나 제주의 역사는 그에게 예술과 사회의 상호성과 독자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 준 계기로 보이며, 이는 개개인의 삶은 결국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의 관계를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공동체적 사회의식 - 소중한 자기발견의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의 1부는 최근작을 모은 것들이고 2부는 주로 80년대 이후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번 개인전 역시 그동안의 작가의  내면에 일어난  변화의 징후가 어떻게 캔버스에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계기로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언어나 소리나 색채에 의해 드러나는 예술가의 정신의 습관은 이와 같이 작품집이나 발표회를 통해 그 기미는 더욱 분명해 진다.

전시장과 인터넷을 오가며 드려다 본 강요배의 그림은 한마디로 무겁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시간의 더께, 혹은 그 이미지들의 퇴적물들이 만들어낸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그림에 묻어나는 낮게 가라앉은 침묵의 무게와 화폭에 서리는 어스름의 근원을 상상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의 풍경들은 대체로 맑고 푸르게 빛나는 섬의 풍광이 아니라 그 풍광들을 받치고 있는 설화, 척박한 풍토와 아픈 역사에 연루되어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초기의 4.3에 대한 작가의 비극적 인식은 소위 역사화기록화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가령광풍(1991) 빈젖(1992) 빌레못 굴의 유골(1992)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바람 치는 해변에 널브러진 시신과 그 위를 맴도는 새떼들, 이를 무연히 내려다보고 있는 한 마리 바닷새, 시신의 빈 젖 물고 있는 아이나 동굴 속에 흩어진 황갈색의 유골들. 강요배가 보인 제주의 상흔에 대한 작가적 책무란 세밀함과 비탄으로 당시의 비극적 정황을 재현하는 일이었다. 유격대원(1989) 붉은 바다(1991) 학살(1992) 망보는 소년들(1992) 수많은 초기의 작품들의 제호가 말해주듯 4.3의 비극적 정황을 극도의 세밀한 묘사로 보여주었다. 현장 곳곳을 답사, 조사한 그의 치밀한 작업방식은 회화의 기록적 기능에 대한 집착이라 할 만하다.

강요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져서 이번 1부 전시에 걸린 젖먹이(2007) 비트 허디의 사진에 바치는 경의(2016)같은 작품들은 초기작들의 증언적 기능에 회화적 조형성을 더한 것들이었다. 죽은 어미의 가슴에 매달려 젖을 빨고 있는 황토빛의 젖먹이, 생선처럼 엮여 집단학살 현장으로 끌려가는 수감자들의 모습과 짙푸른 해면의 병렬. 이 돌올한 화면 분할은 관람자에게 상황의 반전, 급박성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강요배의 초기 작업은 이렇듯 역사의 현장, 기록에 충실하면서 지나간 역사에 대한 기억과 고통을 함께 할 것을 요구한다.    

이번 전시 ()을 찾아서에서 작가는 사물을 보는 법이라는 노트를 통해 구상이나 비구상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나 방법론을 내비쳤다. 그의 단상들은 앞으로의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이 어떻게 그 성취로 이어져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처럼 보였다.  기억이나 고통에 매달렸던 과거의 작업들이 안고 있는 클리쉐, 혹은 그 유형성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기법적 변화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강요배에 등장하는 자연, 혹은 그 풍경들은 대체로 제주로 짐작되는 풍광들로 채워지지만 그 풍경들은 이미 피사체로서의 풍경이 아니다. 유채꽃이나 동백이나 갯바위이거나 바다나 한라의 자태는 있는 그대로도 아니고 보이는 그대로도 아니고, 아마 작가의 느낌, 작가의 마음 안에 남아 있는 상의 재현일 것이다. 그의 풍경은 대체로 칙칙하고 무겁고 거칠지만 그 침묵의 언어 속에는 자연에 대한 외경 혹은 경건함이 함께 묻어 있는 둣하다. 멀리 희미하게 떠 있는 흰옷 입은 산, 이때의 한라산은 신비로운 성채 같다. 가령 한라산 자락 사람들(1992)은 맑고 푸른 정기로 가득한 섬사람들의 평화를 그리고 있는데, 제주인들에게 한라는 섭리이거나 위엄이거나 뜻이었다. 강요배의 대개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넓으며 구름들은 화면의 구성에 따라 측량할 수 없는 슬픔이나 고통의 크기로 떠 있다. 그의 화폭에서 하늘은 지상의 풍경이나 사물들을 압도한다. 작가가 과감하게 할애하고 있는 하늘이나 구름의 크기는 그가 자연에 투사하고 있는 외경이나 우주적 연민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마치 중세 유럽의 풍경화들에서 보게 되는 종교적 위의가 여기서는 침묵이나 외경의 무게로 가라앉아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가 그리는 자연은 해석된 풍경, 혹은 자신을 투영한 것들이다. 그는 풍경을 묘사하기보다는 자신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진록의 이파리와 가지들을 배경으로 한 점 진분홍으로 낙화하는 목 꺾인 동백 한 송이는 상황의 비극성과 처연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후 그것은 恒山」「우뢰비」「보라 보라 보라」「개펄」「치솟음」 「霜降」 「天高」 「風光등 최근작(2017)에서의 이미지의 교합으로 변환되는 형국이다. 그 형상이나 흐름이나 치솟음이나 뒤섞임이나 표면들은 산이나 바다나 비나 개펄이나 하늘을 빙자해서 임의의 혹은 자의적 형태로 자신의 심상을 드러내고 있다. 색의 배합이나 까칠까칠한 붓의 이행을 통하여 보여주는 시간의 더께, 거칠고 아득하고 적막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그의 자연은 그 균제된 조형성으로 시간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하늘과 구름과 산의 경계를 넘나드는 색채의 혼효는 어스름에 차 있고 빗물은 비애처럼 흘러내린다. 검은 하늘과 누런 구름은 대지의 질서 혹은 한 생의 장엄한 일몰을 상기시켜 준다.   

風木(2016)은 산천단에서나 느꼈던 서늘함이 되살아났다. 오래된 나무는 숲의 비밀과 관련되어 있고 그 나무에서 풍기는 귀기나 음기는 그 풍토에 기인한다. 그의 풍경에 자주 보이는 시간의 더께 혹은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관람자에게 유추적 상상력을 유도한다. 그가 不仁(2017)이나 팽나무와 까마귀(1996) 등에서 보여준 기억의 고유명사들이 여기서 하나의 보통명사로 전이된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러므로 지상의 어느 오래된 나무의 사생활이자 풍토의 상관물일 것이다. 풍혈(2016)은 산의 허리나 지맥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의 길 혹은 그 구멍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떤 물상의 구체적 형상이 아니라 작가의 심상의 꿈틀거림에 다름 아니다. 물결인지 바람결인지 냉기인지 온기인지 모를 모호한 형상의 소용돌이가 심상의 소용돌이로 이어진다. 얽힌 바위 사이로 흐르는 풍혈냉천이 개펄(2017)에 이르러서는 오랜 풍화로 다져진 바다나 모래톱의 형상으로 바뀌면서 거칠고 단단한 어떤 표면의 이미지로 전화한다. 갈색과 흑색의 껄끄러운 조화가 고졸(古拙)하다바람이나 나무흙과 바위, 하늘과 땅의 껄끄러운 조화가 만들어낸 이 적막한 고졸미는 아마도 회화의 전범을 이탈하지 않은 그의 고전적 회화기법 때문일 것이다.

강요배의 자연에 대한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당연히 작가의 연대기나 당대의 사회나 역사와의 조응에 의한 것이다. 개개의 창작품은 한 사람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당대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복합적 사고는 중요하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는 상보적, 상호적 상상력에서 비로소 작품의 총체적 의미는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상을 찾아서에 보인 작가의 모색은  이미지로 기우는 최근의 변화에서 분명해진다. 은유는 세계를 드러내는 또다른 방식이다. 그 울림이 상징에 이르면 해석자를 당혹에서 수긍으로 이끌면서 경이에 눈뜨게 한다. 그리하여 꽃비(2004)초록(2014)이 보여준 심미적 효과는 구성의 단순성에서가 아니라 해석의 다의성에서 의미를 찾게 된다고유명사에서 추상명사로 이행해가는 강요배의 최근의 인간과 사물과 풍경에 대한 방법적 모색을 주목해 보자. 풍경과시간, 2018.7.31


멘토의 시간 산문

6.13 지방 선거에 참패한 야당이 원인규명과 위기탈출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리모델링인지 재건축인지 모를 사태로 이어지는 각 당의 요즘의 풍경은 하도 자주 반복되는 것이어서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심사는 이제 씁쓸하지도 우습지도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때마다 정치란 무엇인가 새삼 되묻게 되고 나와 우리가 사회와 역사 속으로 어떻게 편입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타고온 버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지금 가고 있는 속도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다시 자문하게 된다.

야당의 참패에는 저마다 이유도 많고 치유방법도 백가쟁명이다. 한 야당은 자신들이 속해 있었던 무능 부패 정권의 몰락을 자신들과 분리해서 선거에 임하는 우를 범했다. 무엇보다도 일부 당직자가 보여준 일련의 정치적 행보나 발언들은 시대착오적이었고 군부독재 시절의 정치 사회적 관습에 자신을 가둬버린 현실인식 방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 일부의  정치적 발언은 자신들의 품격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들은 정치적 이념과 신념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보수와 수구, 친북과 종북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당적을 같이 했던 또 다른 두 야당은 자신들이 왜 갈라서야 했는지에 대한 명분도 철학도 제시하지 못한 채 적폐와의 연대와 단일화를 얘기했다. 촛불 정국을 이루어낸 정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던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국정농단과 비리정권의 누더기를 걸쳐 입은 이 거대야당은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진보도 보수도 혁신도 아닌 또 다른 야당 역시 응급실에 누워 수혈을 기다리고 있다. 다급해진 그들은 여기저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고 아예 자신들을 도와즐 책사들을 호명하고 있다. 청년 실업을 걱정하고 업무를 기획해야할 그들 자신에게 때 아닌 일자리가 창출된 셈이다. 세간의 책사로 분류되는 몇몇 인사들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구원투수로 입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고 자신들의 정권을 탄핵했던 인사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심지어는 정치와는 무관한 유명 의사를 비대위원장으로 거론하는가 하면 아예 자신의 당과는 수혈 불가능한 혈액형의 학자를 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자고도 했다. 전문적인 의술에 그들이 현혹된 것인지, 학자의 지식에 그들이 현혹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되 이 구애는 지금의 그들의 절박함이 어떠한 지경인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기술이나 지식이 언제나 지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지혜야말로 경험의 축적물이요 그것은 지식과 식견의 차이만큼 중요한 덕목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애타게 찾고 기다리는 멘토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쓴 사도의 계시록이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예언가의 점괘라도 받아 내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장의 장수처럼 자신을 도와줄 책략가를 다시 삼고초려 하겠다는 것인가.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폭력과 전쟁의 황폐를 시대 배경으로 플롯도 스토리도 무대장치도 없이 황량한 한 그루 나무그늘 아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그들은 다만 고도씨를 기다리는 것으로 아득하게 앉아있다. 그들의 하는 일이란 고도가 올 것을 믿는 일과 무연한 수다로 그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고도는 오지 않았다. 고도는 다만 그들의 기다림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선지자인지 구원자인지 극중의 기다림의 대상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상황의 완고성과 지속성이야말로 오늘의 우리가 처한 희망과 절망의 역설적 병행원리이다..

멘토는 오지 않는다. 그는 전쟁터에 나간 친구의 아들을 아비처럼 스승처럼 보살펴주고 사라진 신화 속의 이름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진정한 멘토는 오직 우리 자신의 내면의 손님, 새로운 어떤 신념이나 가치이어야 할 것이다. 내일신문, 2018.7.10


불가역적 '역사와의 약속' 산문

북미정상이 6.12회담의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두 나라는 평화와 번영에 부합되게 새로운 관계 설립과 지속,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하고 4.27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노력하는 한편 신원 확인된 전쟁포로 및 실종자의 유해 송환에 약속했다. 4개의 포괄적인 조항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지만 무겁고 긴 내용들로 채워진 것이었다. 북미합의에 남북합의를 끼워 넣었으니 사실상 남북미 3개국의 합의문인 셈이다.

북미 두 정상은 비록 번갈아 가슴 맞대는 삼단 포옹을 연출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장유유서와 프랜드십에 걸맞는 예절로서 악수하고 어깨와 등에 손을 댔다. 그들은 서로를 치켜세웠으며 이날의 우호적 관계와 합의 사항 실천을 위해 상대국으로의 방문이나 초청의사를 주고받았다. 단독회담 중 각각 측근을 불러 일이 생길 때마다 직통할 수 있도록 서로의 전화번호를 적어주기도 하였다. 회담 후 기자 회견에서는 한쪽 정상이 다른 한쪽의 핵 갱도 폭파에 대한 답례라도 하듯 빈 산이나 바다 위에 비싼 포탄을 쏟아 붓는 전쟁놀이에 불과한 군사훈련을 당장 중단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파견한 자국 군인들의 철수나 감축도 생각해야 할 때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역사의 필연인지 우연인지, 거듭되는 돌발 상황과 반전의 드라마가 펼치는 지금의 평화지도와 한반도의 지각변동이 경이롭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자신의 책상에 핵단추가 놓여있으며 언제라도 그것을 누르기만 하면 상대국의 심장을 강타할 수 있다고 호언하던 꼬마 로켓보이‘이거나 늙다리‘였던 그들. 회담이 열리기 직전에는 측근들에 대한 비난을 빌미로 한쪽이 회담 취소를 전격 통보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좀처럼 믿기지 않은 이 모순되고 불합리하기조차 한 역설의 계절, 전쟁발발 68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반도의 남북회담을 시발로 하여 지금 각국은 다양한 의제의 회담준비로 들썩이고 있다. 북중 북미에 이어 북러 북일회담이 추진되고 있으며 당장 한러회담이 잡혀 있다. 국외의 바쁜 움직임보다 더 빠르게 국내의 실무회담은 그야말로 봇물이다. 남북 군사회담에 이어 체육회담·적십자회담과 철도·도로 연결, 산림협력 회의가 잇달아 열린다. 철도·산림 분과회의에 이어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준비 인력이 방북한다. 개성공단에 설치하기로 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이 예정되어 있다. 이처럼 남북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4·27 판문점 선언 이행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아직 일부 의심 많은 냉전과 수구적 사고에 은둔하고 있는 세력들로부터의 환상적 민족주의종북이니 하는 비아냥도 끊이지 않고 있고, 협의문의 자구에 매달려 회담의 성과를 폄하하거나 과거의 약속파기 사례들을 들어 비관론을 펴는 전문가들의 예단도 있다. 그러나 그날 6월의 젊은 지도자는 말했다.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왔다.”

회담장에서의 젊은 지도자의 첫마디는 과거에의 회한과 현재의 고심을 짐작케 하는 언사로 보였다. 그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와의 결별을 예고하는 외교적 표현을 구사했다. 그들은 전략적 인내를 버리고 화염과 분노로 대응하겠다는 지금의 미국에 굴복한 것일까, 남측의 평화공존의 진정성을 수용한 것일까. 그것은 굴복이기보다는 이성적 결단의 소산이기도 하고 남측의 진정성에 대한 화답으로도 치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손가락 내밀어 걸어보는 이 유월의 약속을 추인하자. 약속이 역사가 되는 길에 부합된다면 그것은 실행되어 마땅하다. 약속을 받아내는데 걸렸던 시간이 오래고 지난했노라고 비난하지 말 일이다. 약속이 쉽지 않았던 것은 그 실행에서 그만큼의 충실을 담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항복문서 아니니 CIVGCIVD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역사와의 약속일 터이다. 내일신문, 2018.6.18


도보다리의 마임극 산문

남북이 만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민족의 공동번영과 미래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과거의 합의는 조속히 실천에 옮기는 한편 남북 철도를 연결하고 이산가족의 상봉 추진은 물론 일체의 충돌과 적대행위를 금하고 특히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나가자는 등의 합의문이었다.

남북은 이제 각각 따로 재깍거리던 서울과 평양 두 개의 시계를 하나로 맞추기로 하였으며, 철조망 너머로 마주보던 확성기를 떼 내고 양국 정상 간의 직통전화도 개설하였다. 북미는 북미대로 핵단추를 누가 크게 누를지 두고 보자던 태도가 급변, 억류했던 인질을 풀어주고 판문점에서 만날까 상그리라에서 만날까 고민하는 사이 핵 실험장 폐기를 위한 갱도 폭파 현장을 참관하라는 통보가 뒤를 이었다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 변화다.

이 상황은 427일의 이른 오전 남북의 두 정상이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잡은 손을 끌어당겨 번갈아가며 남북의 군사분계선을 무단 월경하는 장면을 연출해 보이면서부터 이미 예고되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 때문일까. 이 모순되고 비현실적인 2018년의 봄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끝내 사실로 굳어지지나 않을지 두렵기 조차 한 계절이다. 믿지 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조차도 비현실적으로 고맙기만 하다. 간밤에 내린 함박눈처럼 거짓말처럼 도둑처럼 봄은 왔고, 지금 녹음은 짙어가고 있다.

그 날 사월의 마지막 금요일,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도보다리에서의 두 정상의 산책 장면은 모순되고 비현실적인 이 봄날의 또 다른 진경이었다. 그 도보다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곳은 바로 오래전 명명된 소떼 길의 길섶이었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각인된 과거의 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그 해 유월의 남쪽의 한 재벌 회장의 소떼 방북은 전쟁과 평화와 이데올로기 모두를 한 줌의 바람으로 날려버린 사건이었다. 소떼 500마리를 실은 트럭의 기다란 행렬의 선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녘 땅으로 향하는 밀짚모자 속 실향민 노인의 검게 탄 모습은 아름답고 장엄했다. 어릴 적 부친의 소 판돈 70원을 훔쳐 들고 고향을 떠나온 그가 성공하여 마침내 서럽고 애잔한 그 빚 갚기 위해 그리운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분단시대의 영상이었다. 그 장면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의 퍼포먼스이자 어느 미래학자의 표현대로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 이를 만한 것이었다.

소떼가 지나갔던 20년 전의 그 깊섶 도보다리에서의 두 남자 주연의 35분간의 무성 영상은 한 편의 마임극이거나 단편영화였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드나드는 요원들의 동선을 줄이기 위해 습지 위에 만들었다는 그 다리가 마침내 남북의 동선을 줄이는 다리로 바뀌어가는 순간이었다. 배석자가 사라지고 기자와 카메라가 물러서고 움직임이 원경으로 처리되면서 카메라는 서서히 줌 아웃으로 밀려났다. 멀리 야트막한 산등성이에는 사월의 연두색 초목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주위에 들리는 것은 오직 새소리와 바람 소리 뿐, 나란히 한 두 남자의 어깨는 가끔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쪽은 설명하고 한쪽은 듣는 모양새였다. 한쪽이 말하자 한쪽이 안경을 고쳐 세웠고 한쪽이 손을 흔들자 다른 한쪽이 웃었고 한쪽이 웃자 다른 한 쪽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들은 순간순간 상대방의 머리 위를 스치는 새소리 바람소리를 엿듣는 듯했다가 망연히 한 곳에 시선을 멈춘 채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마임극이기도 하고 무성영화이기도 한 도보다리의 롱 테이크는 장면이 의미에 가담하는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풍경 속의 두 남자는 조금은 고즈넉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때 그들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무슨 얘기를 하였는지를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2018년 봄 도보다리에서의 두 남자의 이야기는 세월 흘러도 마임극으로 남겨둘 일이다. 길을 말하거나 이름을 명명하는 순간 그 길과 이름은 이미 우리에게서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순되고 비현실적인 이 봄이 믿을 수 없이 즐겁고, 그림처럼 왔다가 음악처럼 흐르는 이 봄의 반란에 가슴 설렌다. 내일신문, 201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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