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 산문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단연 야당 후보들의 단일화 문제였지만 요즘은 유력 인사들의 거주지 변경이 또한 화제다. 국민의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던 A씨가 여당인 새누리당으로 입당했고 함께 일했던 B씨도 선거대책 본부의 중책을 맡아 자신이 몸담았던 야당에 포화를 퍼부었다. 리틀 디제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던 C씨도 곧 여당 후보의 지지를 선언할 것으로 전해졌으며, 전 선진당 대통령 후보 D, E씨는 물론 오래 동안 여당의 여성 후보를 무시해 오던 E 전 대통령도 지지를 선언했고 F 전 총리도 여기에 가담할 모양이다. 이쯤 되면 소위 ‘대통합’인지 ‘이합집산’인지가 분간이 가지 않은 형국이요 엄동설한에 때 아닌 이사철 맞은 봄날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A~C씨는 오랫동안 각자 같은 방향으로 달려온 분들이다. 다만 그들은 1차선으로 주행하다가 3차선이나 2차선으로 무지르거나 추월하면서 주행선을 바꾼 적은 있지만 방향은 그런대로 분명한 채로 크게 도로교통법을 위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혼잡한 도로에서 불법 유턴을 감행함으로써 뒤에 따라오는 차량들을 급정거하게 하거나 마주오던 차량들과의 충돌 위험을 자초했으며 D~F씨는 단속 경관에게 돈봉투를 건넴으로써 또 다른 유형의 법관행을 어긴 교통사범의 형국이다.

    저항시인으로 알려진 G씨는 뜻밖의 선언을 했다. “아버지 놓아 버리고, 엄마를 따라서 너그러운 여성정치가의 길을 가겠다는 후보에게 믿음이 간다.”면서 여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는 보도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쯤 되면 차선 변경이 아니라 중앙선 침범이다. 나는 그 보도를 보는 순간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로 끝나는 그의 시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판소리가락의 <오적>을 기억하며 <타는 목마름으로>를 애송했다. 도피와 투옥과 억압으로 이어진 유신시대의 공포를 온몸으로 겪은 그였기에 이번에 보인 그의 행보는 모든 이들에게 ‘돌발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아, K씨”라고 썼고 어떤 이는 “믿을 수 없다”고 썼고, 어떤 이는 “이젠 놓아드리자”라고 했다.

    문학교실에서 소설 속의 인물이 앞뒤 행위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행태를 보일 때 우리는 ‘성격의 불일치’라는 용어로 점잖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작가가 잘못 창조한 캐릭터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무리 가치 혼돈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안 그럴 사람이 그러는 것은 그럴 사람이 안 그런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급선회를 하게 하였는지, 그 뱡향 전환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를 상상해보는 것은 우리의 당혹감과 섭섭함의 근거를 다소간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전향한 것인가? 전향이란 문학사에서는 원래 무산계급과 대중 속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프롤레타리아의 자기변신에서 유래 하였는바, 이들에게서 정치적 신념을 바꾼 흔적이나 표현은 아직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럴만한 자신의 내적 논리나 신뢰할 만한 가치가 전제된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변절한 것인가? 변절이란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꾸는 행위이므로 그들의 지조나 절개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아직 변절자도 어니다. 함께했던 이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매우 사적인 경로의 응징만이 가능할 뿐이다. 조지훈은 그의 <지조론>에서 일제시대의 친일파에게 ‘변절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부질없다고 하였다. 변절과 전향은 내면적 진실과 합리화된 자기논거가 전제되어야 한다. 배신은 변절보다 저급한 인간행태이고, 절개가 없으면 변절도 없고 이념이 없으면 전향도 없다.

    지금 우리사회는 변절자나 전향자로 불릴 만한 인물들의 출현을 갈망해야 할지도 모르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만큼 우리는 가치와 이념의 결핍에 익숙해 있다. 수많은 정치단체나 문화서클들이 이념집단이기보다는 이해집단으로 머무르고 만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의 조급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처한 관계와 통합되지 못한 불편한 공간, 환경이 바뀌어 이미 소외된 곳으로 밀려나 있음을 인지한 새들은 이동을 감행한다. 요즘은 기후 온난화로 인하여 새들의 이동시기도 더욱 빨라졌다고 한다. 선거철을 맞이하여 새들의 생태, 그 동물적 전략을 생각해보는 이 시간이 서글프다. 내일신문 2012.12.6


덧글

  • 零丁洋 2012/12/06 12:52 # 답글

    어쩌면 긍정적일 수 있다 생각됩니다. 그 동안 이념 문제와 지역을 기반으로한 보수 정당끼리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정상적인 보혁구도가 형성되지 못해 다양한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왜곡되거나 무시되어 왔는데 이런 원심 분리로 보혁이 구분된다면 오히려 합리적인 정치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원래 지식인은 배신자라고 하지 않았나요? 머리와 몸이 따로 있는게 지식인이죠. 푹신한 비단 침대에 누워 거리를 헤메는 비참한 A의 삶의 모순을 논하고 해방을 꿈꾸는 것이 지식인이죠.
  • 노노 2012/12/06 15:33 # 삭제 답글

    민주화 시대가 끝나고 보수와 진보로 재편되는 흐름을 못보니까 지는 것임.
  • 미루 2012/12/29 03:54 # 삭제 답글

    교수님, 옥체만강 하옵신지요?
    저 아직 시카고에서 머물고 있는 김미경이에요.
    김원숙 화가님 관련 글을 찾아 읽다가 우연히 교수님의 서재를 발견,
    이거 쾌거 맞나요?^^
    무지 반갑고요,
    내년 일월말에 무사히 돌아가 연락 드리겠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 드려요.
  • joytag 2013/01/02 10:11 # 답글

    곧 돌아오겠네.
    아이들과 존 시간 잘 보내고....
  • joytag 2013/01/02 20:58 # 답글

    김원숙선생을 거기서 만났나요?
    그분 맨해튼 작업실 가지고 있을 때 자주 만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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