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역사의 개그 산문

427일의 남북회담 장소인 판문점이 다시 역사의 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평양도 서울도 아닌, 남도 북도 아닌 이 어정쩡한 공간은 그 지리적 조건의 상징성으로 인해 의미도 더 커 보인다. 오늘의 분단과 대립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판문점은 부근에 널문 다리가 있고 마을에 널빤지로 만든 대문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개성에서 시작된 휴전회담이 널문리로 옮겨지고, 회담이 진행된 장소에 초가집 몇 채와 가건물, 막사와 주막이 있어 판문에 구멍가게를 뜻하는 이 붙었고 이것이 중국어 표기의 판문점이 탄생했다. 비무장지대(DMZ)나 공동경비구역(JSA)은 차라리 드라마의 제목으로나 더 애용되는 이름이다.

판문점을 생각할 때면 우리는 늘 슬픈 한국현대사의 회한과 비감에 젖게 된다. 6.25전쟁이 남긴 이 널빤지문 가게는 그 이름의 초라함에 비해 지구상에서 가장 긴 휴전기간과 지상의 유일무이한 분단국가의 오명을 보유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부터는 그 상대적 박탈감도 커졌다. 영화나 소설에서 즐겨 다루고 있는 이 장벽들이야말로 정치이념이나 제도가 인간성 형성과 마모에 얼마나 깊게 침투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호철의 소설 판문점(1961)은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분단현실의 단면을 재미있게 보여준 작품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이 작품이 꼬집고 있는 바는 생생하고 발랄하다. 소설 판문점은 남측의 기자 진수가 무슨 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에 취재차 나가서 겪었던 일들의 전말이다. 그 일들이란 취재 중 북측의 여기자와의 짧은 만남에서 주고받은 대화나 감상을 중심으로 이어지는데, 북측의 여기자와 남북 체제의 우월성을 다투거나 남북의 생활이나 교류에 호기심과 비판을 보이거나 하지만 사이사이에 남녀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스며든 지프차 안에서 여기자는 무슨 암시나 받은 것처럼 이북 가시죠, ? 이북 가시죠?”라고 월북을 권한다. 그러자 진수는 이봐 그 금니 어디서 했어?”라고 딴청을 부리면서도 비에 젖은 그녀의 머리에서 풍기는 '신 살구알 냄새를 맡고 몸을 떤다. 그들은 다투지만 싫지 않았고 논쟁하지만 수다뿐이었다. 그러나 두 세계의 이질감이나 단절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함께 살고 있는 서울의 형님 부부의 속물적이고 자본적이고 권태롭기조차 한 일상이나 여기자로부터 듣게 되는 북녘의 경직되고 긴장된 일상 양쪽에 비애를 느끼는 그는 두 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판문점에게 쫒기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남쪽의 사회적 혼란이나 북쪽 체제의 경직성 모두에게서 이역감을 감추지 못한 그는 다시 판문점을 찾아 북측의 여기자와 만난다. 여기자는 첫눈이 왔다고 말하고 얼굴을 붉히자 진수는 처음 만난 것 같군요, 다시 힘들어졌군요 라고 말하면서 미소 짓는다. 경계와 방어태세로 되돌아온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진수는 기집애, 조만하면 쓸만한데.” 중얼거리며 쓸쓸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이야기의 중간쯤에서 비몽사몽간에 판문점에 대한 자신의 몽상을 늘어놓는다.

2백년쯤 뒤 고어사전에서 판문점이란 .....1953년 생겼다가 19XX년 없어졌다. 여기에서 휴전 회담이라던가 군사 정전회담이라는 알 수없는 회담이 무려 5백여 회에 걸쳐 열렸고 그 회담기록이 적힌 거창한 문건이 지금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인 익살로서 개성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이 해괴망측한 건물은 사람으로 치면 가슴패기에 난 부스럼 같은 것인데, 부스럼은 부스럼인데 별로 아프지 않은 부스럼이다. 그 원인은 부스럼환자가 좀 덜됐다 불감증이다 어수룩하다는 데 있다.....

판문점을 인류 역사의 '익살로 풍자하고 가슴패기의 '부스럼으로 비유했다. 그리하여 판문점에 무신경한 일상의 안일을 경계하는 작가의 시대의식을 보여준다. 6.25때 인민군으로 동원되어 동해안까지 내려갔다가 포로기 되고, 풀려나 단신 배를 타고 월남하여 부두노동자, 미군기지 경비원 등을 전전한 작가의 이력은 그의 예술적 성취를 가능케 한 자산인 셈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판문점은 공룡화되고 삼엄해져서 남북이 함께 소나기를 피할 공간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작중 인물 진수의 판문점에 대한 상상은 그래서 더 슬프고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우리는 부끄럽다. 맨 땅에 줄 그어놓고 이쪽과 저쪽이 마주하고 있는 판문점, 역사의 개그인 그 널빤지문 가게는 이제 유적지로 전환시켜야할 때이다. 내일신문, 201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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