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본인 산문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경제 위기론이 퍼지고 일본의 지방 도시들이 한국인 관광객의 감소와 예약취소로 고통을 호소하는 뉴스 사이사이에 문득 떠오르는 한 일본인의 얼굴이 있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가 나에게 친절해서가 아니라, 일본인이면서 한국을 고향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오랜 동안 한국에 오기를 꺼려했던 그의 사연 때문이다.

나의 일본체험이란 대학에서 처음 접했던 저들의 소설들을 통한 정도였다. 가령 다자이 오사무나 오에 겐자부로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나의 그동안의 선입견을 수정해 주었고, 생에 대한 아득한 비감과 절망, 삶의 이념이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그들의 경도는 당시 내 또래 청년에게는 신선한 감흥이었다. ‘전범국일본 소설이 보여준 전후의 일본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체험한 현실 속의 일본인은 Y대학의 T교수를 비롯한 몇 명 정도. 재직하던 대학과 상호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Y대학에 교류교수로 한 한기를 머물렀던 때였다. "연구 파트너"를 맡아준 T교수는 말없이 친절했고 자상했다. 그는 모리 오가이와 염상섭을 비교해 보겠다는 나의 연구과제는 뒷전으로 하고 일본어를 못하는 나에게 조선족 유학생과 서울의 일본문학 유학생을 통역사로 붙여 주었다. T교수와의 모든 대화는 물론 식사나 회합에 두 유학생 중 한 명은 반드시 통역으로 합석했다. 건장한 체구의 그는 술을 좋아했고 한량 끼 넘쳤으며 자신의 명함에는 작은 서체로 시인 누구누구로만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인으로서보다는 일본문학 연구자로서의 저서가 많은 듯했다.

나에게 한국의 근대소설사 한 시간짜리 특강을 의뢰하고 강연료를 듬뿍 주었던 어느 날, 모처럼 내가 사는 술에 거나해 진 그가 2차로 카라오케를 안내했다. 그는 볼륨을 높여 옆방의 소란을 진압하고 한국가요를 불렀다. "대전발 0시 오십분~"이었다. 그는 자신을 엔카는 물론 한국노래 열성 팬이라 소개했다.

T교수와 두 유학생과 함께 한 나의 일본에서의 시간은 그런대로 매우 즐거웠다. 학기가 끝나가고 귀국이 가까와 지자 나는 그곳 숙소와 연구실 살림을 챙겨주었던 외사과 담당 직원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회식이  끝나고 옆자리의 통역 학생이 먼저 자리를 뜨게 되자 그와 나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아타미 휴양지를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의 유수 문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원하시면 사모님과 함께 며칠 묵을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나의 대접에 대한 답례인 셈이었다. 고마운 제안에  나는 흔쾌히 가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와 나의 대화에 가벼운 냉기가 흘렀다. 마침 그날은 아쿠타가와 상인가 하는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날이었고, 노벨상에까지 화제가 옮겨지자 일본에 수상자가 많은데 그 상들이 사실은 개인보다는 국가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까지도 잘 넘어가다가,  문득 일본의 식민지배가 화제가 되었다. 몇 마디 얘기가 오가고, 그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한국인은 결코 잊지 못하고 있노라고 나는 덧붙였다. 조금 예민한 장면이었다. 회식은 정중히 끝났지만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사흘이 지날 때까지 그에게서의 소식은 없었다. 아타미 휴양지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자 곧바로 답이 왔다. - 지난번의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남은 일본 체류 동안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단 두 문장이었다.

T교수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그에게서 학위를 받았던 이쪽의 일본문학교수 한 분도 그를 마중하기 위해 김포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에 내린 T교수가 감회에 젖어 한마디 했다. 통역하던 일문과 교수가 고향(?)에 오니 설렌다 하시네요.” 하며 의아해 했다. 나는 그 교수에게 그날 밤 다까다노바바의 노래방을 나와 T교수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자신은 임란때 가고시마로 끌려간 백제도공 남원 박아무개의 후손이라고 한 말“두려움 때문에" 아직 한국에는 가보지 못했다는 얘기까지.

다까다노바바 주점에서의 T교수의 쓸쓸한 웃음이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끌려간 사람이 끌어간 사람의 죄업까지 등에 진 것인가. 도공으로 끌려가고 징용으로 끌려가고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에게 덧 씌워진 원한과 분노와 치욕의 원천은 무엇일까, 리의 근현대사가 곧바로 한일관계사로 겹쳐지는 지금 일본은 우리에게 누구인지, 우리는 그들에게 누구인지를 새삼 되묻게 되는 요즘이다. 내일신문, 2019.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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