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모국어 산문

동네 버스정류장 건널목에 메기의 秋億이라는 매운탕집이 있다. 미꾸라지가 가을철먹거리인 것은 알려져 있지만, 왕성한 식욕으로 온갖 물고기를 먹어치워 보양식으로 찾는 메기는 외려 초여름에야 그 향이 좋다고 한다. 追憶을 굳이 秋億이라고 병기해 놓은 한자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메기의 元祖보다는 나아 보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널리 알려진 미국민요 「매기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기라는 물고기가 「매기라는 인명과 겹쳐지고 追憶秋億(이라는 단어는 없다)으로 오해되면서 의미의 혼란을 가져왔다. 검고 탐욕스러운 물고기의 형상이 사랑을 못다 이루고 일찍 죽은 여인으로 대체되어 잊지 못할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가을먹거리로 강제시켜 놓은 것. 미운 우리 새끼는 어느 TV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무리의 오리들과는 다르게 생겨 수난 받던 오리가 사실은 백조였다는 안데르센 동화 미운 오리새끼를 제목만을 따와 바꿔치기 한 것이다. 나이든 어머니들이 둘러 앉아 혼자 사는 아들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결혼 못()한 장년 자식들의 일상을 보며 부모자식간의 정감이나 우스개를 담았다. 풍문으로 들었쇼show는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소문들을 들추거나 진상을 취재하여 보여주는 프로이다.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가문의 세습을 꿈꾸는 특수 상류층의 권위의식과 속물근성을 풍자적으로 그린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제목을 바꿔치기 한 것이다.

주변의 수많은 사례들 중에서 아무렇게나 예를 든 이 같은 간판의 상호나 TV프로의 경우는 조야한 오늘의 우리 사회의 언어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부자연한 어휘의 조합은 그대로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혹은 억지스럽게 만들어지고 구사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언어유희나 조어력의 확장은 각 언어들의 특장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크게 보아 패러디라는 수사적 기능에 연결된다. 패러디는 원본(원 단어)의 주제를 바꿔치기 함으로써 얻게 되는 심미적 효과로서 개작이나 확장되기 이전의 대상에 대한 전이해가 전제되는데 이들의 경우는 그 상호성이 전혀 없다

잘못 구사된 패러디는 결국 잘못 구성된 조어들에 그 원인이 있다. 둘 이상의 상이한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동시적인 이해나 공유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이 패러디의 범람은 오늘의 우리의 언어 환경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넘쳐나는 은어 속어 비어들의 조급한 조합은 그 수명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 단어들이 어떤 문맥 속에 개입했을 때의 해독은 매우 커진다.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어절을 이루고 어절이 하나의 비유나 상징으로 이행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언어의 훼손 왜곡은 자연스럽게 사물의 왜곡 혹은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낸다

오늘의 언어 환경은 한글 반포 573돌을 마냥 자축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외국어 외래어 비속어와 은어가 넘쳐나고 표현적인 문장은 사라졌으며 직설적인 막말만이 난무한다. 정체불명의 조립된 언어가 사고의 황폐화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국제화 세계화에 편승하여 외국어가 모국어를 밀어내고 있다. 외국어교육이 강화되고 주창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지만 그 이념과 방법에서 보여준 최근의 사례들 또한 절망적이다.  

영어는 이제 특정국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어로서의 권능을 행사한지 오래되었다. 대학들은 영어강의 개설에 바쁘고, 영어강좌 확보율에 따라 세계화로 가는 척도로 삼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모국어를 밀어내고 일시 유행 중인 외국어로 진행되는 강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식의 정보량도 학습의 효율성도 교육의 주체성도 정체성도 모두 포기한 정신의 식민화, 무주체 외화주의일 뿐이다. 외국어 학습의 중요성을 외국어 강의의 필요성으로 믿고 있는 오늘의 교육 담당이나 정책 입안자들의 현실인식은 문제다. 지금 우리의 언어 환경은 오염을 넘어 사회병리로 치닫고 있다. 내일신문, 201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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